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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책

책은 도끼다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프란츠 카프카)


우선 간단히 책 소개를 하자면, 이 책은 다양한 문학작품을 인문학적 관점으로 풀이한다. 이 책에서 소개된 문학작품들은 인문학이라는 언어로 쓰여졌기에 이 책을 해설하기 위해선 인문학적 소양이 필수적이다. 나 같은 범인은 문장의 깊은 의미, 저자의 의도, 시대상황 등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박웅현 씨가 날카롭게 갈아놓은 도끼를 잠시 빌리는 수밖에 없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아쉬움이었다. 영화 식스센스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었다는 사실을 영화 보기 전에 미리 알게 된 느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오히려 이 책을 읽기 전에 여기서 소개하고 있는 작품들을 접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혼자서 이 작품들을 접했다면 세세한 의미 파악에는 어려움을 겪었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안타깝다.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내 자신이 안타깝고, 이 작품을 단행본으로 접하지 못한 것도 안타깝다. 그래서 꼭 이 책에서 언급했던 작품들을 다 읽어 볼 생각이다. 되든 안되든 나도 나만의 해석을 해보고 싶다.

 

책을 읽으며 특별히 인상 깊었던 부분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익숙한 것에서 낯섦을 느낄 수 있는 시선이고 두 번째는 지중해적 삶이다. 이 둘은 내게 서로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전자는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말해주는 듯 했고, 후자는 그저 그림의 떡처럼 느껴졌다.


익숙한 것에서 낯섦을 느낄 수 있는 시선

나는 매일 타는 지하철, 자주 가는 음식점, 항상 듣는 노래 등에서 새로운 느낌을 받지 못한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책에서 소개된 김훈, 고은의 작품을 보며 항상 새로움을 찾는 것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것이 통찰력이라는 것을 느꼈다. 특히 고은의 시 한편은 나를 마치 9회말 투아웃 끝내기 홈런을 허용한 투수처럼 멍하게 만들었다.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보지 못한/그 꽃이 시를 읽고 나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때 느꼈던 감정을 글로 옮기지 못하는 내 필력을 원망해야겠다. 흔히 볼 수 있는 꽃 한송이에서 세상의 단면을 발견해낼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통찰력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고은이라면 내가 매일 타는 지하철, 자주 가는 음식점, 항상 보는 컴퓨터 속에서도 새로운 삶의 단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나 역시 미약하게라도 그것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지중해적 삶

이 책 전반을 관통하는 메시지라고 느꼈다. 지중해적 삶이란 과거와 미래, 주위 환경에 얽메이지 않은 현재 내 자신을 위한 삶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나도 에메랄드 빛 바다를 품은 햇살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한가지 가정을 해보자. 김화영, 카뮈, 장그르니에는 자신들의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지중해적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낭만이며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당위성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중해적 삶을 사는 모두가 성공하였을까? 만약 지독한 실패로 인해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지중해적 삶을 산다고 해서 그들이 낭만이고 로망일까? 나는 제도권 밖을 벗어나 그들처럼 성공할 자신이 없다. 내 자신에 대한 불신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바꾸어 말하면 내 자신을 불확실성으로부터 지키고 싶은 방어기제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저 지중해적 삶을 살며 성공한 사람들을 동경하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그저 그들의 부산물인 책을 통해 대리만족하고 멋진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책은 도끼다를 통해 내 독서 취향이 많이 변할 것 같다. 과거엔 오로지 전문서적, 교양서적만 읽으려 했다. 그것이 남는 것이고 나를 성장시킨다고 믿었다. 하지만 문학 역시 훌륭한 선생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한 나만의 해석으로 재해석하는 재미를 알았다앞에서 말했듯 일단은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모든 작품을 읽어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겠다그리고는 모든 것을 새롭고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중해는 나의 로망으로만 간직한 채 말이다.


이 책이 얼어붙은 내 마음을 완전히 깨트리지는 못했지만, 미세한 균열은 만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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